우리나라에서 사극이 인기가 많습니다. 왕조들중 조선왕조를 제일 많이 다뤘기에 대중들도 자세히는 몰라도 조선왕조에 대한 지식이 많이있습니다. 정확성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이나 사건은 한번씩 다 들어봤을 것입니다.
특히 극적으로 재미있게 다룰만한 소재들은 몇차례식 반복됩니다. 그런 소재중에 하나가 숙종과 장희빈, 숙빈 장씨의 이야기입니다. 1961년 68년 김지미, 남정임씨가 장희빈으로 나와 영화로도 2번이나 촬영됐고, 드라마는 1971년 윤여정씨를 시작으로 장희빈을 메인으로 한 드라마만 7편 정도가 방영됐습니다. 가장 최근 것이 2013년에 김태희가 나온 [장옥정 사랑에 살다]같습니다. 2016년 상반기때 [대박]에서 오연아씨가 장희빈으로 나왔지만 메인이 아니걸 빼도 7편정도니 많이 방영됐습니다.
그런데 장희빈이 죽을 때 아들, 세자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드라마도 장희빈의 아들, 심지어 숙종 다음에 보위를 이었음에도 그 아들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는 없습니다. 장희빈 나올 때 잠깐씩 아역으로만 출연했을 뿐입니다. 숙종, 경종, 영조, 정조로 이어지는데 마치 역사가 숙종, 영조, 정조로 이어지는 느낌.
오늘 10월 11일이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로 조선 조선 20대 임금이 된 이윤, 경종이 돌아가신 날, 승하하신 날입니다. 통치 기간이 짧아 크게 백성들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충분히 경종이 추모할 가치가 있는 분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간다하게 경종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숙종 14년 10월 이윤이 태어났을 때 숙종이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때는 숙종이 장희빈과 관계도 좋을 때긴 했지만 100일도 안된 아들을 원자로 삼았습니다. 신하들이 반대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숙종 나이가 28살, 중전 인현왕후가 21살이었습니다. 원자는 세자가 되기 전에 신분입니다. 중전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은 자연스럽게 원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윤은 중전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 아들을 원자로 세우면 나중에 중전이 아들을 낳아도 이윤이 세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이 어린 아들을 원자로 세우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결국 원자로 삼습니다. 그 만큼 숙종은 아들이 이뻐했습니다.
그런데 원자가 세자가 되고 14살 되던 해 어머니가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두 명의 동생이 태어나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연잉군과 연령군입니다. 연잉군이 훗날 영조입니다.
이때 세자의 처지가 말이 아닙니다. 왕의 사랑은 떠났고, 어머니와 같은 세력인 남인들은 사라졌고, 그나마 세자를 보호하려고 했던 소론들은 힘이 없고 모두가 정적입니다. 모두가 세자를 끌어 내리거나 죽일 생각만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아들이 왕이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선 역사에 지금과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사약을 받아 죽고, 그 아들이 왕이 됐을 때 그 관계자들에게 철저하게 복수했던 역사, 심지어 죽은 사람은 그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다시한번 죽이는 부관참시까지 했습니다. 연산군입니다. 이윤이 왕이되면 연산군이 되지 않을 거라 누가 보장합니까?
숙종 43년, 세자가 서른 살이 됐는데 자식도 없고, 몸도 허약하고, 성격도 소심하고, 말수가 적었습니다. 당연하죠. 매사 조심해야 살 수 있는 상황. 이 시기에 왕은 세자를 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왕이라도 세자를 마음대로 폐할 수는 없습니다.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미 숙종 42년 [병신처분]을 통해 세자를 보호하려고 하던 소론들을 모두 쫓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좌의정 이이명과 독대후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깁니다. 그런데 이상한게 보통 왕이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긴다고 하면 신하들이 보통 예의상으로라도 반대를 하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약속한 듯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했습니다. 이들이 세자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아마도 실수를 기다렸다고 그것을 빌미로 폐하기 위해서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자의 대리청정이 시작됐을 때 세자는 좀처럼 대답하지 않고 듣기만 했습니다. 뒤돌아 보면 세자 역시 반반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14살 이후 하루 하루가 위기였고, 그런 살얼음의 나날을 살아온 세자이니 쉽게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그런 모습이 신하들은 우습게 보이거나, 무능력해 보이건, 너무 소심해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세자가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실수도 없었습니다. 시간은 옥좌에 앉은 사람의 편입니다. 그러는 사이 경종의 동생이기도 한 연령군이 죽고,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도 죽었씁니다. 그리고 세자빈도 죽고, 새로 세자빈을 맞게 됩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세자의 입지가 탄탄해 졌습니다.
1720년, 숙종 46년 6월 8일, 거의 실명상태로 몇 해를 보낸 숙종이 배가 점점 불러오다가 향년 60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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