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의 고조선은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주변의 부족들을 통합해 나갔습니다. 당시 고조선은 랴오닝 지방을 중심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잇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연맹 왕국이었습니다.
BC 3세기 무렵. 중국은 당시 전국시대였고, 전국7웅국 중에 하나인 연나라는 랴오허를 사이에 두고 고조선와 이웃해 있었습니다. 고조선의 세력확장을 지켜보던 연나라는 당시 철기문명을 바탕으로 고조선을 공격해 랴오둥을 빼앗고 랴오둥 군을 설치했습니다. 연나라의 침입이 고조선이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BC 1세기경부터는 철기가 널리 보급되어 생활 도구와 무기의 대부분을 철로 만들었고, 이에 따라 철을 단단하게 담금질 하는 방법도 발전하게 됩니다.
철기시대의 유물로는 칼, 창, 도끼, 화살촉 등의 무기와 낫, 괭이, 반달칼, 쟁기 등의 농기구, 그리고 끌, 톱 등의 공구가 발견되었는데 이처럼 철기시대가 열리자 한반도 사회는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게 발달한 것은 농업분야에서입니다. 아무래도 연장이 단단하니 지금까지보단 훨씬 더 일하기가 수월해 졌을 것입니다. 도구의 발달은 농업생산량을 늘어나게 했고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이때는 농기구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움집에 온동장치를 했으며, 땅 위에 나무로 집을 짓기도 했습니다. 또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이 아니라, 구덩이에 시체를 묻는 널무덤(토광묘)과 2-3개의 항아리를 맞붙여 쓰는 독무덤(옹관묘)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널무덤은 오늘날의 매장 방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철기문화로 사람들의 생활이 풍족해지자 자연스럽게 빈부의 격차가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빈부의 격차는 정치와 군사적 업무를 맡는 지배층과 생산을 담당하는 피지배층인 노예, 평민의 신분계급을 낳았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자 도둑질이 성행했고 사회질서를 위해 범금 8조라는 법이 만들어 집니다. [한서]에 실린 범금 8조의 내용을 추려보면 다음 세가지입니다.
1.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에 처한다
2. 남을 다치게 하는 자는 곡물로써 갚는다.
3.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고, 죄를 면하려면 50만의 돈을 지불한다.
범금 8조의 내용을 보면 고조선 사회에서는 생명과 개인 재산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고, 또 당시는 노예가 매매대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조선에 노예가 많았다는 것은 순장 무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순장은 왕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의 노예도 주인과 함께 묻는 제도입니다.
BC 221년, 진나라에 의해서 중국이 통일되었습니다. 시황제는 중국을 전역에 군, 현을 설치하여 중앙 정부의 지배력이 지방까지 미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진 제국은 시황제 사후 곧 붕괴됩니다. 진나라가 붕괴하자 제일 세력이 컸던 초나라 출신인 항우와 유방이 대립하고 마침내 유방이 승리하여 한나라를 세웁니다. 이 사람이 ‘한 고조’인데 BC 202년의 일입니다.
한 고조는 노관이라는 사람에게 옛 연나라 땅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노관은 야심이 많았던 자로 한 고조가 건국 8년 만에 죽자 한나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곧 반역이 알려지고 노관은 흉노 땅으로 도피합니다.
노관의 부하 중에 위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상투를 틀고, 조선을 옷을 입고다는 사람으로 한민족 출신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위만은 노관을 따라 흉노로 가지 않고 1천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조선으로 와서 당시 고조선의 왕이었던 준왕을 찾았습니다. 이에 준왕은 위만에게 압록강과 청천강 일대의 국경수비를 맡깁니다. 이에 위만은 변방을 지킨다는 구실로 군사들을 모아 훈련을 시키고 열심히 철제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한나라로부터 왕을 지킨다는 구실로 그동안 훈련시킨 군사들을 이끌고 왕검성으로 들어가 준왕을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었는데 이때의 조선을 흔히 ‘기자 조선’이라고 부릅니다.
왕이 된 위만은 국호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여 고조선의 전통을 계승하고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또 준왕의 신하들 중 슬기롭고 덕을 갖춘 사람에게는 큰 벼슬내렸는데 준왕에 비해 위만이 능력이 있던 군주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국내 사정이 안정되자 위만은 주변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하기 시작하고 한강 이남의 작은 나라들이 한나라와 직접 교역하는 것을 막고 중개무역권을 차지했습니다. 그러자 중국은 기자조선이 흉노와 협력할 것을 염려해 랴오둥 태수를 위만에게 보내 세 가지 조선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합니다.
첫째. 조선은 한나라의 신하 나라가 될 것
둘째. 랴오둥 땅 주변의 부족들로 하여금 한나라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할 것.
셋째. 한나라를 섬기는 부족국가의 우두머리들이 한나라 황제를 보려고 할 때 방해하지 말 것
위 세 가지 조건을 승낙한 위만은 한나라에 군사와 물자 원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는 그 군사와 물자를 가지고 영토를 더 넓혀 갔습니다. 한편 한나라에서는 7대 황제인 무제가 재위에 오르면서 최고의 전성시대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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